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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안녕과 번영. 그의 영원한 꿈이었다. 외국의 진귀한 물건과 정신에 물들지 않는, 순수한 민족정신을 옹호했다.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지도자를 찬양하는 데 앞장섰다. 그에게 민족이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순백의 이상’. 국가를 위해선 목숨도 걸겠다는 결기도 확고했다. 보수주의의 영혼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의 일기장에는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소년에게 느낀 성적 충동이 고스란히 적혀 있어서다. 이제 10대 중반 백인 소년들을 향한 무한한 예찬이 펼쳐진다. 마치 고대 그리스 남성들이, 미소년 탐닉을 시민의 의무로 여겼던 것처럼.
햇살론 dti 두 얼굴을 가진 남자의 이름은 토마스 만.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마의 산’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이자, 독일 보수주의의 대표로 통한 인물이다.
토마스 만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독일이 통일된 지 막 4년이 지난 1875년 태어났다. 오랜 숙적 프랑스를 무력으로 제압한 뒤 건국한 나라이자, 나폴레옹에 당한 치욕을 되갚음한 새희망홀씨대출서류 영광스러운 조국. 하나 된 독일에 대한 애정이 넘쳐흐르던 시절이다. 독일제국 황제 빌헬름과 철의 재상 비스마르크에 대한 지지는 하늘 높은 줄 몰랐다.
독일제국은 아직 열강의 위협 속에 있었다. 보복을 열망하는 프랑스와 유럽 대륙의 강자를 견제하는 영국. 하나 된 독일을 위협하는 외국에 맞서 젊은이들은 타자를 향한 분노를 쏟아냈다. 아(我· 채무 조정 제도 나)와 비아(非我·남)의 구별 속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발육하기 마련이다. 이를 몸과 마음에 체화한 대표적 인물이 토마스 만이다.
1901년 출간한 그의 대표작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에는 보수적인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전통 독일적 가문 부덴브로크가. 그들 집안에 이방인 여인들이 한둘씩 가족으로 들어왔다. 검 공무원신용불량 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이질적 존재들. 대를 이어갈수록 금발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의 푸른빛 역시 짙어졌다. 상징의 상실은 가문의 몰락으로 연결됐다. 타자와 만남을 병으로 그려낸 셈. 토마스 만은 “아주 특별히 독일적인 책”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그의 내면에는 보수주의와 조화하지 않는 성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동성애’다. 자전적 소설 ‘토니오 크뢰 영국성적 거’에서 주인공은 같은 반 동성 남자인 친구와 사랑에 빠진다. 미소년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유려한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다. 그가 현실 세계에서 느낀 감정을 그대로 옮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1914년 조국을 향한 애국심은 더욱 들끓고 있었다. 황제 빌헬름 2세가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선언하면서였다. 토마스 만은 이 전쟁을 열렬히 옹호했다. 애써 하나 된 조국이 다시 다른 열강에 의해 분열될 수 없었기 때문. “위대하고 기품 있으며, 엄숙한 독일인의 전쟁”이라고 정의했다.
토마스 만의 견고한 마음에 균열이 생긴 건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부터였을 것이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패전국 독일에 막대한 배상금이 부과됐다. 제국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는 새로운 체제가 들어섰다.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엄청난 물가 상승에 경제는 무너지고, 시민의 삶은 팍팍했다. 희생양을 찾아 나서기 시작할 때, 일부 정치인이 한 집단을 겨냥했다. 잇속에 밝은 사람들, 언젠간 손봐주겠다 벼르고 있던 사람들. 유대인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유대인 상점에 돌이 날아왔다. 거리를 걷던 유대인들은 조리돌림당했다. 복장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독일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이들은 하나같이 외쳤다. “위대한 독일과, 독일 민족을 위하여.” 토마스 만이 그리던 애국은 독일 땅에서 점점 괴이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독일에서 증오는 조직화되고 있었다. 유대인 혐오에 장작을 더하고, 이 화력을 동력 삼아 움직이는 조직이 생겨났다. 나치였다. 폭력을 사회 정화로, 혐오를 애국으로 포장하던 이들. 그 시절부터 작가 토마스 만은 점점 그들과 거리를 두고 있었다. 자신이 늘 얘기하던 독일적인 것의 모습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1924년 ‘마의 산’에서 그의 보수적 색채는 한층 옅어졌다. 다양한 이념의 가치를 받아들이며 삶의 복잡성을 사유한다. 정치적 격변 속에서도 토마스 만의 젊은 소년에 대한 사랑은 계속됐다. 1927년 우연히 만난 17세 소년에게 애정을 느끼고 그와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토마스 만은 42세 유부남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다만, 그의 마음속 깊은 곳의 보수주의가 브레이크를 건 탓인지, 동성애는 언제나 플라토닉에 그쳤다. 어린 남자와 몸을 섞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다.
‘독일 보수주의의 영혼’이라고 불리는 작가 토마스 만 초상. 오른쪽은 그의 대표작 ‘마의 산’.
10대 백인 소년 향한 ‘무한 예찬’…러브레터 주고받기도
1929년 토마스 만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경찰은 그러나 나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을 문제 삼아 감시 체제를 강화했다. 극우 세력은 그를 빨갱이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노벨상을 받은 지 4년 후, 독일에 새로운 총리가 임명됐다. 아돌프 히틀러다.
히틀러가 집권 후 한 일은 ‘계엄령’ 선포였다. 바이마르 헌법 48조를 근거로 댔다. ‘제국 내에서 공공의 안전과 질서가 심각하게 교란되거나 위협받을 경우, 제국 대통령은 이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경우, 군대의 지원을 받아 개입할 수 있다.’ 오늘날처럼 권력은 언제나 법의 약한 고리를 끌고 왔다. 히틀러의 나치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토마스 만 역시 독일을 떠나야만 했다. 그의 부인 역시 유대인이었다.
“독일 동포 여러분께.”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암담한 시절. 독일 전역에 토마스 만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망명한 토마스 만이 영국 BBC와 손잡고 선전 방송을 하고 있었던 것. 왜곡된 독일을 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그에게는 있었다.
“1만명 넘는 유대인들이 15분 만에 독가스로 인해 죽어갔습니다. 비명과 기도 소리가 가득 찬 방 앞으로 나치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습니다.”
약 4년의 대독일 선전 방송이 끝난 뒤, 마침내 전쟁이 끝났다. 그를 전투적 인본주의자(militant humanists)로 부르는 이유다.
극우는 토마스 만을 배신자로 불렀지만 정작 그는 전향한 적이 없다. 인권과 체제를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대한 저항일 뿐이었다. 독일을 오염시키고, 보수주의를 병들게 하는 모든 것에 대한 항변이기도 했다. 그는 늘 제 자리에 서 있었으나, 오른쪽으로 치닫고 마침내 괴물이 돼버린 이들은 그를 ‘좌익’ ‘빨갱이’ ‘배신자’라고 몰아세웠다. 독일의 영적인 심성을 굳게 지지했다는 점에서 20대의 토마스 만과 50대의 토마스 만은 한 치도 변화하지 않았다.
나치를 피해 미국에 머물던 토마스 만은 망명 생활의 괴로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토마스 만은 대답한다.
“내가 어디에 있든, 내가 있는 곳이 독일입니다(Wo ich bin, ist Deutschland).”
독일의 진짜 정신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독일이라는 명문이었다. 보수의 정신, 그리고 독일은 히틀러 따위에 오염될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강영운 매일경제신문 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91호 (2025.01.01~2025.01.0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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